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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경제 역사·이야기

응애응애, 연방준비제도 탄생 배경

나도 위기의 용광로에서 탄생했다네...


 은행 건전성 규제안인 바젤 협약이 위기에서 탄생해 또 다른 위기를 거치며 발전해 나간 것과 같이, 연방준비제도 또한 위기의 용광로에서 탄생하였다. 사실 미국의 첫 중앙 은행, Bank of the United States 는 초대 재무장관이던 알렌산더 해밀턴의 주도로 1791년 탄생했다. 이는 독립 전쟁 기간 동안 각 주정부들이 발행한 막대한 부채를 중앙 은행으로 하여금 대신 차환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각 주정부의 권한 약화와 독점적 지위에 대한 우려로 인해, 1811년 의회에서 이루어진 20년  만기의 중앙 은행 면허 갱신 표결이 부결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Bank of the United States 는 미영 전쟁 이후 1816년 재탄생되는데, 이 역시 이전과 비슷한 이유로 20년 면허 만료와 함께 1836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 첫번째와 두번째 Bank of the United States 는 통화 정책을 관장하고 민간 은행들을 관리 감독하는 현대적 의미의 중앙 은행은 아니었다. 오늘날 미국의 중앙 은행 시스템인 연방준비제도는 1913년 연방준비법과 함께 탄생하였으며, 그 계기는 1907년 미국의 금융위기였다.


The headquarters of the Knickerbocker Trust Co., New York.

 

 1907년 당시 미국 금융 위기의 불씨를 지핀 곳은 신탁 회사(trust company)였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받던 대형 은행과 달리 규제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었다. 이에 신탁 회사들은 공격적인 영업과 투자 행태를 보이며 기존 은행권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신흥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 시기, 하인즈와 모스라는 투기꾼들은 United Copper 라는 구리 채굴 회사 주식에 대해 소위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주가 조작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United Copper 주가는 폭락했고, 투기꾼들에 막대한 레버리지를 제공한 은행권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초기 예금 인출 사태 속에 대형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무 구조의 신탁 회사들, 그 중에서도 니커보커 트러스트가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가장 먼저 파산한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는, 신흥 금융 세력인 신탁 회사의 득세를 견제하고자 은행들이 투기꾼과 니커보커 트러스트간 연관성에 대해 루머를 퍼뜨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뉴욕에서 세번째로 큰 신탁 회사이던 니커보커 트러스트의 파산을 목도한 예금자들은, 온갖 금융 기관에서 본인들의 예금을 인출하기 위한 본격 뱅크런을 개시한다. 군중의 패닉 속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일시에 몰려든 예금 인출 요구를 감당할 수 없던 다른 은행과 신탁 회사 역시 줄줄이 사탕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것이 1907년 미국 금융 위기가 시작이었다.  



최후의 대부자, J.P.모건


 이처럼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중앙 은행이 나서 시중 은행에 자금을 공급하고 시장의 패닉을 진정시켜야 한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는 중앙 은행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에 당대 최고의 재벌이자 금융권의 대부였던 J.P.모건이 그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했다. 어차피 그 공황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본인 또한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J.P.모건이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금융 기관에 구제 금융을 실시하고 강력한 리더쉽으로 사태를 정리하기 시작하자, 1907년의 금융 공황 사태는 점차 진정되어 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J.P.모건은 금융권과 산업 전반에 대한 본인의 엄청난 영향력을 증명했고, 그 대한 정치권과 시민의 경계는 높아져만 갔다. 이러한 반 금융, 반 독점의 사회 분위기 속에 출범한 미 하원 푸조 위원회는 거대 금융 자본의 미국 산업 장악에 대해 고발했고, 푸조 위원회가 종료되던 1913년 J.P.모건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역시 1913년, J.P.모건이 금융 위기 당시 수행했던 최후의 대부자 역할과 민간 금융 기관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위해, 미국의 세번째이자 오늘날의 중앙 은행 체계인 연방준비제도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연방준비제도의 구조에 대해 알고 싶다면, <미국 중앙은행 제도, 연방준비제도의 구조> 편을 참조하자.


J.P. 모건,  반지의 제왕 김리를 닮았다...


 번외로, 1930년대 대공황까지 거치며 엄격한 금융 감독과 규제를 위한 정치권의 공세는 계속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1933년,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한 은행법, 속칭 글래스-스티걸법이 탄생된다. 글래스-스티걸법에 따라 J.P.모건 은행은 상업 은행 업무에 전념하게 되었고, 투자 은행 업무는 1935년 J.P. 모건의 전 파트너들이 설립한 모건 스탠리가 인수하게 된다. 이것이 모건의 이름을 단 한 핏줄 두 형제 회사가 갈라지던 순간인 것이다.   



 <참조 자료>

이왕휘, 김용기. 미국 금융개혁의 정치경제: JP 모건 사례. 서울대학교 미국학연구소.

Roger T. Johnson. Historical Beginnings...The Federal Reserve. Federal Reserve Bank of Boston.

History of Central Banking from 1791 to the 21st century . The Federal Reserve System.

차현진. 뱅커, 세상을 구원하다. 웹진 금융 Vol.705 Dec 2012.

David Fettiq. F. Augustus Heinze of Montana and the Panic of 1907. The Re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