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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경제 역사·이야기

바젤 협약, 그 업그레이드의 역사


바젤 협약(Basel Accord), 바젤 I 의 탄생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듯, 위기를 맞이한 뒤에야 금융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인간의 행태이다. 1974년 독일 헤르슈타트 은행 파산 이후 그 여파가 유럽 및 미국 등에까지 미치자, 국제적 차원에서 은행권의 적절한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는 주요 중앙은행 간 협의체인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이 출범하는 계기가 된다. 바질 허브도 아니고 바젤이 웬 말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바젤은 국제결제은행이 소재하고 있는 스위스의 지명일 뿐이니 너무 고민하지 말자. 아무튼 이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1988년 글로벌 은행들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규제안을 도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바젤 협약(Basel Accord)이며 그 결과물이 바젤 I 으로 불리우는 자기 자본 규제 제도이다.  



 은행은 사회에 신용을 창출하고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은행이 도산하게 될 경우, 이는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망하는 것을 넘어 사회 전반과 경제에 크나큰 파급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바젤 I 은 각국 은행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 자본을 쌓도록 해, 대출 같은 은행 보유 자산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게 했다. 그 '일정 수준'의 기준이 되는 것이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줄빠따의 역사> 에서도 잠시 언급 되었던 "BIS 비율" 또는 "BIS 자기자본 비율" 이다. BIS 비율은 아래와 같이 자기 자본을 위험 가중 자산으로 나누어 계산하다. 즉, 은행이 위험한 자산을 많이 보유할수록 그에 비례해 자기 자본을 더 많이 쌓도록 설계된 산식이다. 바젤 I 은 이러한 BIS 비율에 대해 8%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다만, 권고라는 말이 그렇듯 이 국제 기준은 의무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각 회원국들이 해당 권고를 각국 금융 감독 규정 등에 반영하고 있으며, 바젤은행감독위원회 차원의 실태 점검과 국제 기구 평가 등을 통해 바젤 협약은 실효성을 가지게 된다.


바젤 II, 업그레이드 컴플리트 


 바젤 I 의 도입으로, 은행들은 더이상 무차별적인 위험 감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르랴, 바젤 I 역시 여전히 맹점을 지닌 규제안이었다. 대표적으로 대출 받는 사람, 즉, 차주의 신용도에 따른 차등 없이 특정 자산에 대해 일괄적으로 동일한 위험 가중치를 적용하였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은행이 삼성전자에 대출해준 10억과 옆집 가내 수공 업체에 대출해준 10억이 어쨌든 같은 '기업 대출'이라는 이유로 동일한 위험 가중치를 받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부담하는 저신용 기업들에 대한 대출을 증가시킬 유인이 있었다. 이에 2004년 완성된 바젤 II 는 단순히 자산군에 따른 위험 가중치에서 탈피해, 차주의 신용 위험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신용 평가는 은행의 자체적인 모델을 사용하거나(내부등급법) 또는 외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 등급(표준방법)을 사용하도록 했다. 한편, 신용 및 시장 위험과 더불어 바젤 II 는 은행의 운영 위험 역시 감안하도록 고안 되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Barclays 나 HSBC, Citi 같은 글로벌 은행과 어느 후진국 마을 금고의 내부 관리 감독 능력이 같다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국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모 쯧쯧쯧 금고 직원이 수십 수백억을 삥땅치고 잠적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던가. 따라서 바젤 II 는 내부 감독 시스템이 후진적인 은행의 경우, 더 많은 자기 자본을 쌓도록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자본을 더욱 세분화하여 기본자본(Tier1)과 보완자본(Tier2)로 나누었다. 기본자본이란 보통주와 비누적 우선주, 이익잉여금 따위의 실제 자기 자본 성향이 매우 강한 자본들이며, 보완자본은 전환사채, 후순위채, 대손충당금, 누적 우선주 등 비상 시에 손실 흡수가 가능한 말그대로 보완성 자본들이다. 바젤 II 는 기존의 BIS 자기자본 비율 8% 외에 기본자본(Tier1) 비율 4%, 보통주 자기자본 비율 2%의 요건을 추가하여, 보다 양질의 자기 자본을 쌓도록 유도했다. 이외에도 각국의 감독 기능과 공시 역시 강화토록 하여, 전반적인 은행의 건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젤 II 는 업!그레이드 컴플리트 되었다.


바젤 II 와 바젤 III 의 3축 체계. 업그레이드 컴플리트! 



금융위기의 용광로에서 태어나다, 바젤 III


 그러나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시킨 2007~2008년의 금융 위기는 바젤 II 를 무색하게 여러 글로벌 은행과 금융 기관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았다. 이러한 위기의 불싸다구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든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금융 위기를 교훈 삼아 다시 한번 바젤 II 업그레이드에 착수하고 마침내 2010년 바젤 III 를 내놓게 된다. 금융 위기 당시 많은 투자 은행들은 단기 차입에 의존해 장기 주택 모기지 채권에 투자하는 식의 영업을 일삼았다. 이에 위기가 닥치자 당장 갚아야 하는 단기 부채들로 인해 은행들은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이러한 유동성 위기는 재차 보유 자산의 일시 대거 처분으로 시장 붕괴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 따라서 바젤 III 는 은행들의 유동성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위기 시 한달 간의 현금 유출에 대응할 수 있는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LCR, Liquidity Coverage Ratio) 와 1년 이상 장기 자산 운용 시 자금 조달 역시 장기로 하도록 하는 순안정 자금조달 비율(NSFR, Net Stable Funding Ratio) 규제를 도입하였다. 더불어 기본자본(Tier1) 비율을 4% 에서 6%로, 보통주 자기자본(CET1, Common Equity Tier1) 비율 2% 에서 4.5% 로 상향하고 자본 인정 기준을 강화하여, 바젤 II 보다 더욱 양질의 자기 자본을 구축하도록 했다. 또한 기존의 바젤 II 체제에서는 자기자본비율 계산 시 차주의 신용 위험을 고려하는 특성으로 인해, 경기가 좋을 때는 오히려 위험을 과소 평가하여 더 적은 자기 자본을 요구하고, 경기가 나쁠 때는 오히려 더 많은 자기 자본을 요구하도록 하는 경기 순응적인 특성이 있었다. 이에 바젤 III 에서는 미래의 위기를 대비한 별도의 손실 보전 완충 자본을 경기에 대응해 0~2.5% 범위에서 쌓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기본자본(Tier1)을 총 자산과 부외 익스포저를 합한 총 익스포저의 3% 이상으로 유지토록 한 레버리지 비율 규제를 도입했다. 이거시 바로 바젤 III 이다.




진격은 계속된다, 바젤 III 하고 쩜오


 바젤 시리즈의 업그레이드는 계속 되고 있다. 2017년 12월 7일 바젤 III 개편안이 확정되어, 2022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 예정이다. 앞서 차주의 신용도를 위험 가중치에 반영토록한 바젤 II 를 기억하는가? 오오~ 그렇다면 그 차주의 신용도 평가에 있어 은행의 자체적인 모델을 사용하거나(내부등급법) 또는 외부 신용평가기관의 평가 등급(표준방법)을 사용하도록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렇다. 바젤 III 개편안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은행들이 각자 자신들만의 모델로 제각각 신용 위험을 평가하면서, 이 BIS 자기자본비율(이하 변종들)의 은행 상호 간 비교 가능성이 많이 취약해진 것이다. 이에 내부 등급법을 사용하는 은행들이라 할지라도, "느그 임마 정도껏 해라!" 라는 차원에서 표준 방법으로 산출한 규제 자본의 72.5% 이상을 보유하도록 자본 하한을 설정했다. 또한 표준 방법 역시 리스크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등 몇가지 개선점을 반영하였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바젤은 지금도 또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는 또 위기의 불싸대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읭?   



<참고 자료>

송홍선, 장정모, 한상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자본 규제의 국제적인 변화. 자본시장연구원.

KB 금융지식비타민 규제환경변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신경철, 이광열, 강환우, 김기범, 박광빈, 조민주. 바젤III, 도입 배경 및 최근의 주요 변화. 삼정KPMG 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