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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경제 역사·이야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 버블 형성과 붕괴

도시 전설의 시작 : 70-80년대 부상기


Night Scene, The Ginza, Tokyo, Japan, 1980 by Terry Feurerborn, CC BY-NC 2.0


 부잣집 아들래미가 아니어도 샴페인 한 병 들고 헬기 타고 해돋이를 보러 간다는 도시 전설과도 같은 일본의 리즈 시절이 있었다. 80년대 후반 엄청난 경제 호황과 부동산 거품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실 그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끝이 없겠다만은 얼추 70-80년대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본격 부상하던 시기에서부터 이야기하면 어떨까 싶다. 80년 대 초반 일본은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육성, 보호를 통해 미국을 위협하는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 하였더랬다. 중간에 석유 파동과 같은 부침도 있었으나, 미국이 인플레이션 잡겠다며 가파르게 금리를 상승시키는 바람에 미국 제조업은 골골댔고, 그 빈자리를 일본이 치고 들어와 빠르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해 나갔다. 이 같은 정부 주도의 산업화는 일본을 뒤따른 대다수 동아시아 국가들의 20세기 후반 발전 모델이기도 했고, 이에는 국가 발전과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한 아시아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 몫 했을 것이다. 



플라자 합의와 부동산 버블 : 85년~90년 리즈 시절


Yen Weaker Now Than at Time of 1985 Plaza Accord, WSJ


 그리하여 일본은 80년대에 들어 전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무역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막대한 대일 무역 적자를 누적해가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일본을 때려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달러 강세 속에 지속적인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를 기록하던 미국은 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G5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 절상을 통한 달러 약세 유도를 요구하고, G5는 이에 깨갱하고 합의한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인 것이다. 이 합의를 통해 엔화 절상이 이루어지자, 일본은 엔고 전환에 따른 수출 부진과 경기 침체 위험을 우려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일본 정부는 이를 막고자 저금리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등을 통한 시중 유동성 공급에 나서게 된다. 이에 85년 5% 수준이던 일본은행 재할인 금리는 86년 2.5% 수준까지 하락하게 된다. 



 한편 그동안 막대한 무역 흑자를 기록해오던 일본 기업들은 주체할 수 없는 잉여 자금과 플라자 합의 이후 완화적인 일본 통화 정책 환경을 바탕으로 부동산과 주식 쇼핑에 나선다. 이는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우려한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이, 자본 이득세 없이 주식과 부동산 투자가 가능토록 일반 기업들에게 84년 투금 계정을 허용하면서 불이 붙게 된다. 즉, 막대한 유동성이 실물 시장이 아닌 자본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당시 일본 은행들의 기업 대출은 대부분 부동산 담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대다수 신용 버블이 그렇듯, 일단 늘어난 자산 가치(부동산 가격 상승)은 해당 자산의 담보력을 상승시켜 추가 대출을 가능케 했고 그렇게 창출된 새로운 유동성은 자산 가치를 다시 또 상승시키는 영차영차 버블의 순환 고리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부동산 버블에 기반한 무한 신용 공급은 주식 시장 버블 또한 유지시키는 힘이기도 했다. 88년도 시가 총액 기준 전세계 기업 순위를 보면 10위권 내 8개 기업이 일본 기업이며, IBM과 엑슨 단 2개 기업만이 미국 기업이다. 더불어 100대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는 형국이다. 일본 기업들이 잘 나가기도 했겠지만서도, 그 순위가 주식 시가 총액 기준이란 걸 보면 당시 일본 자산 시장에 얼마나 거품이 끼어 있었을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 90년대 폭망기


 

 결국,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주거 비용 폭증과 함께 사회 갈등이 심화되자, 마침내 일본 은행은 과열 진정을 위해 88년부터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 시작했고 정부 역시 부동산 대출 규제와 같은 정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부동산 가격 상승을 담보로 신용이 확대되었던 일본 경제는 부동산 경기 하강과 함께 대출자들의 자금 흐름이 경색되었고, 은행은 날로 대출자들에 대한 원리금 상환 압박 수위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영차영차 버블의 순환 고리와는 반대로, 부동산 가격의 하락과 함께 낮아진 담보력은 대출자로 하여금 원리금 상환을 요구할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대출자들은 부동산을 처분해 해당 원리금을 갚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이 샀던 제 값에 팔려야만 말이지... 모두가 다 부동산 처분을 통해 원리금 상환에 나서려 하면 결국,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대출자들은 부동산을 팔아도 대출금 상환이 안되는 빚더미에 올라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정부의 가파른 금리 인상에 9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인 부동산의 투매와 주식 시장 붕괴가 일어 났고, 주택 융자 전문 기관과 몇몇 중견 은행들은 뱅크런과 함께 파산하기에 이른다. 폭망의 90년대, 최근까지 이어졌던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인 것이다. 여기에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한 일본 생산 연령 인구의 하락 전환은 이러한 경기 침체를 더욱 가속화하기까지 했다. 

 

Tokyo Stock Exchange 1990 by Andreas Gursky


 한편, 무너져내리는 주식 시장에 산소 호흡기라도 달아보고자, 일본 정부는 금융 기관의 주식 매도를 제한하고 각종 공적 기금을 동원해 주식을 매수하는 등 온갖 용을 썼다. 그러나 대세 하락을 거스를 순 없었고, 인위적인 개입의 결과 괜한 금융 기관 회계 부정과 같은 스캔들만 야기하며 시장 심리는 날로 악화되어 갔다. 95년도에는 일본 기준 금리가 0.5% 수준까지 떨어지고, 엔화를 절하시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역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저런 노력에도 90년대 후반까지 일본의 경기는 끊임없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땅굴 파고 지하 세계를 탐방하던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역자산 효과를 불러일으켜 소비를 둔화 시켰고, 금융 기관의 대출, 채권 부실화와 증시 하락은 신용 경색을 통해 기업 투자를 제한하며 일본 내수 시장을 지속적으로 침체시켰다. 그리고 이에 따른 과잉 생산 능력이 조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리즈 시절의 유산 : 아아...그래도 괜찮은 인생이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이 재로 변하고 한 때의 불같은 추억만이 남은 것은 아니었다. 리즈 시절 차고 넘치는 유동성과 엔고를 바탕으로 막대한 해외 투자를 해둔 덕에,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일본은 91년 이후 부동의 세계 최대 대외 순채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엔화가 일본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불구, 세계 최고의 안전 통화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토록한 기반이 되었다. 심지어 일본은 지금도 경상수지 흑자의 상당 부분을 수출이 아닌 해외 배당금과 투자 수익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17년도 대외 지급분을 제외한 순 해외 배당금과 투자 수익만 19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그 일본의 막대한 해외 직간접 투자는 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가져오는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으니, 이는 추후에 다시 다뤄보도록 하겠다.




<참조 및 관련 자료>

정유신. 일본경제 장기침체 특성과 대응정책에 관한 연구.

전용식, 윤성훈, 채원영. 국내경제의 일본식 장기부진 가능성 검토. 보험연구원

전승지, 김광래. 일본 해외투자의 역사와 시사점. 삼성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