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융 경제 역사·이야기

현대 중앙은행의 정책 프레임, 물가 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

물가 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에 대하여...


 자, 본질적인 이야기부터 먼저 시작해보자. 중앙 은행은 왜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가? 사실, 세상 만사가 그렇듯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중앙 은행이 한 국가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을 살펴보면, 물가 관리의 책무가 중앙 은행에 부과되는 것이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중앙 은행은 한 국가에서 유일하게 발권력을 가지고 있는 주체로, 시중 통화 공급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단기 금리 결정 등 시중 통화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통화 정책"을 관장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통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는 오직 물가 뿐이다. 안정적인 물가가 효율적인 국가 경제 운영의 필요 조건라면, 그 관리 책임은 통화 정책을 관장하는 중앙 은행에 부과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통화 정책이 경기 부양 등의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물가 안정만이 중앙 은행의 유일한 책무는 아닐 수 있으나, 오늘날 중앙 은행의 최우선 과제가 물가 안정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거 중앙 은행들이 물가 관리를 위한 사용한 주요 통제 변수(Nominal Anchor)는 통화량과 환율이었다. 통화량과 물가의 관계는 화폐수량설을 설명하는 어빙 피셔의 교환 방정식 PQ=MV 에 기반하고 있다. P의 물가, Q의 산출량, M의 통화량, V의 통화유통속도로 이루어진 해당 방정식은, V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Q가 통화량과 무관하다는 가정 하에, 통화량(M) 물가(P) 결정한다는 결론을 도출케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통화유통속도의 불안정성이 두드러졌고, 막상 통화량(M)을 중앙 은행의 목표 통제 변수로 삼자 위 방정식의 관계 역시 불분명해졌다. '루카스 비판' 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인위적 정책의 시행과 함께 그에 반응한 각 경제 주체의 기대와 행동 또한 달라졌기 때문이다.


 환율 목표제의 경우, 자국 통화의 가치를 통화 가치가 비교적 안정적인 기축 통화에 연동시킴으로써 물가를 관리하는 정책이다. 이럴 경우 물가 안정은 물론, 정책의 비일관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자국 상황에 맞는 독립적 통화 정책 운용을 포기해야 한다는 치명적 약점에 직면한다. (1) 환율 안정 (2) 통화정책 독립성 (3) 자유로운 자본 이동의 세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다는 '트릴레마(Trillemma)' 인 것이다. 더불어 환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중앙 은행은 적절한 금리 조정과 필요시 적극적인 외환 시장 개입을 해야 한다. 그에 실패할 경우, 고정 환율과 실질 통화 가치와의 괴리를 노린 국제 투기 세력의 공격을 야기할 수 있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사례를 기억하고, 기억이 안나는 사람<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줄빠따의 역사> 를 보자.


 어쨌든 이러한 통화량 목표제와 환율 목표제는 각각의 약점과 그 효용의 감소로 인해, 오늘날의 물가 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으로 차츰 대체되었다. 물가 안정 목표제란 어떤 통제 변수(Nominal Anchor)를 거치지 않고 '물가 상승률' 그 자체를 목표로하는 정책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중앙 은행이 "나 물가 상승률 n% 를 타겟으로 정책을 펼거야!" 라고 명시적으로 밝힘으로써, 경제 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을 정책 목표에 수렴하게 만들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통화량이나 환율에 국한되지 않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명시하는 것은 통화 정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사후적인 평가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즉, 물가 안정 목표제는 (1) 명시적인 목표 수치와 (2) 그 달성 책임이 핵심이다. 


 물가 안정 목표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각국 중앙 은행의 통화 정책 프레임으로서 비교적 잘 작동해 왔다고 평가 받는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이 물가 안정 목표제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각국 중앙 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에만 몰입한 나머지 자산 시장의 버블을 키웠다는 비판인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중앙 은행의 물가에 대한 통제력이 차츰 약화됨에 따라 대안적인 정책 프레임들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를테면, 명목GDP 목표제나 물가 수준(Price-Level) 목표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논의 단계일 뿐, 물가 안정 목표제는 아직까지 대다수 주요 선진국 중앙 은행의 표준적인 정책 프레임으로 그 지위가 굳건하다. 



 이러한 물가 안정 목표제는 1990년 뉴질랜드에 의해 최초 도입되었으며, 이후 캐나다(91년), 영국(92년), 스웨덴(93년), 호주(93년) 등 많은 나라들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1998년도 부터 물가 안정 목표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중장기 물가 상승률 목표 2%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 역시 비공식적으로 물가 안정 목표제를 운영해왔으나, 2012년 1월에 2% 의 물가 상승률 목표가 연방 준비은행의 의무에 장기적으로 부합한다고 발표하며 이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하였다. 그런데 말입니다....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2%...2%...왜 하필 2% 인 것일까? 이에 대해 오늘은 떡밥만 뿌려두고, 다음에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 우구리


<참고 자료>

Guillermo Ortiz Martinez, Inflation Targeting, Bank of Canada

김준한. 인플레이션 타게팅의 변화 및 그 배경. 한국은행.